시작하며
겨울이면 유독 생선구이 냄새가 진동하는 전남 고흥 전통시장.
이곳에는 100년 넘게 불씨를 지켜온 생선구이 거리가 있다.
단순히 생선을 굽는 일이 아니라, 새벽부터 이어지는 불 조절과 손질, 건조의 연속이다.
그 정성 덕분에 지금도 전국 각지에서 손님들이 찾아온다.
1. 새벽 5시, 불을 피우는 사람들
이른 새벽, 시장 골목에서는 대나무 숯 깨지는 소리가 울린다.
상인 김효순 씨는 골프채로 숯을 깨 불씨를 만든다.
대나무숯을 일정한 크기로 쪼개야 일정한 불세기가 유지된다.
불이 너무 세면 생선이 타고, 약하면 익지 않는다.
🔥 불 조절에 얽힌 장인의 손맛
- 재로 덮는 이유 : 숯의 온도를 낮춰 은근한 불로 유지하기 위해서
- 약불 유지 시간 : 보통 3시간 이상, 생선 속살이 고르게 익도록
- 작업자 자세 : 불 앞을 오가며 온도를 조절해야 하므로 한순간도 자리를 비울 수 없다
뜨거운 불 앞에서 하루를 보내다 보니 손에는 늘 화상 자국이 남는다.
그럼에도 불을 피우지 않으면 장사를 시작할 수 없다는 마음으로 버틴다.
2. 생선 손질, 하루의 절반을 차지하는 노동
생선 손질은 단순히 비늘을 긁는 일이 아니다.
도매상에서 들어온 생선을 받자마자 곧바로 손질이 시작된다.
(1) 손질의 기본 과정
① 비늘 제거 : 잔비늘이 남으면 굽는 도중 식감이 달라져 꼼꼼히 긁는다.
② 내장 제거 : 손질 시 찬물로 해야 신선함이 유지된다.
③ 아가미 세척 : 펄을 먹고 자란 생선은 아가미 속에 펄이 가득해 세척에 특히 신경 쓴다.
손이 차가운 물에 오래 잠기다 보면 손끝이 마비될 정도지만, 그 과정을 건너뛸 수는 없다.
(2) 염장, 간이 고르게 스며들게 하는 손끝의 감각
- 소금의 양은 저울이 아니라 손끝의 감각으로 결정
- 간이 덜하면 비리고, 지나치면 짜서 상품성이 떨어진다
- 보통 3시간 정도 염장을 반복하며 뒤집어 준다
이 모든 과정을 마쳐야 비로소 ‘굽을 준비가 된 생선’이 완성된다.
3. 옥상으로 오르는 길, 반건조의 시간
염장을 마친 생선은 곧장 옥상 건조장으로 옮겨진다.
하지만 이 과정이 가장 힘들다고들 한다.
수레에 생선을 가득 싣고 오르막길을 수십 번 오르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 생선이 제대로 마르려면 이런 점을 신경 써야 한다
- 입이 아래로 향하도록 널어야 수분이 고이지 않는다
- 눈이나 비가 오면 천으로 덮고, 날씨가 개면 다시 벗겨서 말린다
- 완전히 마르기까지 최대 4~5일이 걸린다
겨울에는 특히 건조 속도가 느려서 하루에도 여러 번 확인해야 한다.
눈이라도 내리는 날이면 건조장을 수십 번 오르내리는 건 기본이다.
4. 굽는 기술, 불과 시간의 싸움
생선구이의 핵심은 ‘불 조절’과 ‘타이밍’이다.
같은 불이라도 생선의 종류에 따라 굽는 시간이 다르다.
(1) 생선 종류별 굽는 요령
① 굴비·조기류 : 살이 단단해 중불로 천천히 구워야 식감이 살아난다
② 고등어·꽁치 : 기름기가 많아 약불로 오래 구워야 타지 않는다
③ 오징어 : 익는 도중 말리듯 구워야 모양이 틀어지지 않는다
오징어를 굽는 상인들은 항상 돌로 눌러서 굽는다.
그래야 몸통이 뒤틀리지 않고 속까지 익는다.
껍질이 얇은 종은 호일을 덮어 태우지 않게 한다.
생선 한 마리를 굽는 데 걸리는 시간은 보통 3시간 이상.
그 긴 시간 동안 불 앞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장인의 일상이다.
5. 시장 풍경, 손님과 상인의 신뢰
고흥 생선구이 거리는 이제 단순한 시장이 아니라 사람들이 일부러 찾아오는 명소가 되었다.
제철 생선부터 평소 보기 어려운 생선까지 다양하게 구워 판매한다.
손님들은 “도시보다 훨씬 저렴하고 맛이 깊다”며 박스로 사 간다.
🧺 이 시장이 사랑받는 이유
- 현장에서 바로 굽는 직접 조리 방식
- 손님 주문에 맞춰 굽는 맞춤식 판매
- 오랜 세월 단골을 지켜온 상인들의 신뢰
점심 무렵이면 시장 안 식당마다 사람들로 붐비고,
상인들은 손님이 “잘 먹었다” 한마디만 해도 피로가 녹는다고 말한다.
6. 눈 오는 날의 시장, 그들의 또 다른 싸움
겨울 고흥의 시장은 아름답지만, 눈이 쌓이면 생선 말리기가 쉽지 않다.
눈이 쌓이면 다시 털어내고, 천으로 덮었다가 걷는 일을 반복해야 한다.
한 상인은 “눈 오는 날엔 손이 얼어붙어도 생선을 걷어야 한다”고 했다.
그 수고를 견디는 이유는 단 하나, “맛있게 먹었다는 손님 말 한마디” 때문이다.
이 작은 문자가 하루의 피로를 다 잊게 한다고 했다.
마치며
고흥 전통시장의 생선구이 거리는 단순한 시장 풍경이 아니다.
그 안에는 세대마다 이어온 기술과 성실함, 그리고 손맛의 역사가 있다.
뜨거운 불 앞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그들의 하루 덕분에,
지금도 고흥의 골목에서는 노릇한 생선 냄새가 쉼 없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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