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치악산 상원사, 고요한 계곡길 끝에서 만난 초겨울의 빛
처음엔 단풍을 보려던 마음이었다
11월 중순의 치악산은 이미 가을의 끝자락을 넘어서 있었다. 단풍은 거의 다 떨어지고, 숲길엔 바스락거리는 낙엽만 남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발걸음이 가벼웠다.
성남지구에서 상원골주차장까지 차를 몰고 들어가니, 길은 생각보다 좁고 구불구불했다. 겨울철엔 이 구간이 결빙되어 일반 차량 접근이 어렵다던데, 막상 와보니 그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차 두 대가 교행하기도 버거운 길이었다.
상원골주차장은 약 15대 정도 들어갈 만한 크기였다. 작지만 화장실이 있고, 주차장 한쪽에 지게짐 몇 개가 놓여 있었다. ‘상원사까지 짐을 지고 오르면 복을 받는다’는 이야기가 붙어 있었다. 괜히 미소가 났다.
천천히 오르다 보면 어느새 들리는 계곡물 소리
상원골주차장에서 상원사까지는 약 2.7km 남짓, 왕복하면 3시간이면 충분했다. 길이 급경사도 아니고, 오르막이 시작되는 시점도 5교 이후라 처음엔 꽤 여유가 있다.
상원1교부터 5교까지 다섯 개의 철제다리를 건넌다. 다리 아래로는 상원골계곡이 흐르는데, 초겨울의 물소리치고는 힘이 있었다. 여름에 오면 이 구간이 참 시원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가엔 아직 떨어지지 못한 단풍 몇 장이 남아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흙냄새와 젖은 낙엽의 냄새가 묘하게 섞여 있었다. 이런 냄새를 맡으면 계절이 바뀌고 있다는 게 실감난다.
상원사에 닿기까지, 그리고 종소리
오르막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때쯤 일주문이 나타난다. 그 문을 지나면 곧 상원사의 기와지붕이 모습을 드러낸다.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눈에 띈 건 종이었다. 누구나 세 번 칠 수 있게 되어 있었고, 실제로 사람들이 조심스레 줄을 당겨 종을 울렸다. 청아한 소리가 계곡 쪽으로 길게 흘러내렸다.
나도 잠시 멈춰 세 번의 종소리를 들었다. 이상하게도 그 소리에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평온함이 담겨 있었다.
대웅전 앞마당에는 두 마리의 백구가 낮잠을 자고 있었다. 이름은 상구와 보리라 했다. 방문객들 사이에선 이미 유명한 터줏대감들이다. 그 모습이 평화로워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불상 아래에서 느낀 초겨울의 공기
상원사 대웅전 옆 쉼터에 앉아 숨을 고르며 주변을 바라보았다. 단풍이 모두 떨어진 산사 풍경은 다소 쓸쓸했지만, 햇살만큼은 따뜻했다.
차가운 바람과 따뜻한 햇살이 교차하는 이 느낌, 그것이 아마 초겨울만의 공기일 것이다. 산신각으로 올라가 내려다보면 상원사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적막한 계곡과 회색빛 숲이 어우러진 풍경이 묘하게 마음을 끌었다.
남대봉으로 향하는 갈림길이 있었지만, 굳이 가지 않았다. 조망이 없는 곳이라 들었기 때문이다. 대신 그대로 하산을 택했다.
하산길의 낙엽과 마지막 발자국
돌아오는 길은 올라올 때보다 미끄러웠다. 11월 중순이라 눈은 없었지만, 젖은 낙엽이 미끄럽게 깔려 있었다. 이맘때 치악산을 찾는다면 등산화 밑창 점검은 꼭 필요하다.
계곡을 따라 내려오면서 다시 들린 물소리는 전보다 낮고 차분했다. 곧 얼어붙을 그 소리를 듣고 있으니 왠지 계절의 끝을 배웅하는 기분이 들었다.
주차장에 도착하니 딱 세 시간 정도가 흘러 있었다. 손끝이 시려워 장갑을 껴보니, 그제야 겨울이 시작됐다는 걸 실감했다.
짧은 정리, 그리고 마음에 남은 한 문장
치악산 상원사 코스는 짧지만 여운이 긴 길이다. 화려한 풍경은 없지만, 그 대신 조용한 사찰의 숨결과 계곡의 소리가 남는다.
겨울을 앞둔 이 시기, 상원사까지의 길은 ‘화려함을 비우고 고요를 채우는 시간’이었다.
“산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마음이 고요해지는 그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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