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경주 송화산 옥녀봉, 단풍이 아직 남아 있던 하루
처음엔 단풍이 다 졌을 줄 알았다
11월 23일, 이미 겨울이 성큼 다가온 줄 알았다. 경주국립공원 화랑지구 쪽으로 향하면서 ‘이제 낙엽 하나 남지 않았겠지’ 싶었는데, 막상 송화산 옥녀봉에 오르니 생각이 달라졌다.
바닥엔 낙엽이 수북했고, 가지 끝에는 아직 물든 잎이 매달려 있었다. 햇살이 포근해서 그런지 공기에서도 겨울보단 가을의 잔향이 느껴졌다. 바람이 세지 않으니 걷기에도 딱 좋은 날이었다.
터미널에서 흥무공원까지, 짧지만 애매한 거리
경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흥무공원까지는 도보로 25분 정도. 버스를 타면 3분 남짓이지만 정류장에서 내리고 나서도 20분은 걸어야 한다. 그래서 대부분은 그냥 택시를 탄다. 2km 정도 거리라 요금은 4,000원 안팎. 혼자라면 조금 아깝지만, 짐이 있거나 시간 아끼고 싶을 땐 나쁘지 않다.
흥무공원 입구에 도착하면 ‘경주시민헌장’ 비석 뒤편으로 산길이 보인다. 표지판이 없는 초입이라 조금 헷갈릴 수 있는데, 주민들이 자주 오가는 길이라 사람 따라 올라가면 된다.
생각보다 완만했던 산길, 그리고 벤치의 타이밍
초반 5분은 꽤 가파르다. 하지만 그 구간만 지나면 숨이 한결 가라앉는다. 첫 번째 이정표부터 옥녀봉까지 왕복 2.4km 정도, 쉬엄쉬엄 오르면 두 시간 남짓 걸린다.
길 중간마다 벤치가 적당히 놓여 있는데, 참 신기하게도 “이쯤에서 좀 쉬고 싶다” 싶을 때쯤 하나씩 나타난다. 나무잎이 많이 떨어져서인지 숲속이 훤히 보여 새들이 더 자주 눈에 띄었다. 송화산은 유난히 새소리가 잦았다. 나무를 쪼는 소리가 들리는데, 꼭 딱따구리만 그런 건 아니었다.
정상에 오르니, 경주 시내가 아련히
정상 가까이 가면 단풍이 한층 짙어진다. 빨강과 주황이 섞여 마치 물감 번진 듯했다. 올해는 윤달 영향으로 가을이 길다고들 하지만, 이렇게까지 남아 있을 줄은 몰랐다.
옥녀봉(해발 276m)은 낮은 봉우리라 금세 닿는다. 다만 정상에 나무가 많아 조망은 기대하기 어렵다. 대신 오르는 길목에서 경주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순간이 더 좋았다. 나지막한 산의 장점이랄까.
소소해서 더 좋았던 산행의 끝
마지막 500m쯤은 계단이 이어지며 조금 숨이 찬다. 그래도 힘들다 싶을 때마다 누군가 갈아둔 날짜판이 눈에 들어왔다. 작은 정성 덕분에 기분이 괜히 따뜻해진다.
사람들은 국립공원이라 하면 험한 산을 먼저 떠올리지만, 이렇게 가볍게 오를 수 있는 곳도 있다. 송화산 옥녀봉은 초보자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코스다. 길이 잘 닦여 있고, 흥무공원 쪽에서 오르면 주차도 편하다.
경주국립공원 화랑지구는 벚꽃으로 유명하지만, 가을의 끝자락도 참 좋다. 나뭇잎이 다 떨어진 겨울 산보다 이렇게 남은 색을 따라 걷는 길이 훨씬 여유롭다. 돌아보면, 그날 느낀 건 단 하나였다.
결국엔 ‘이 정도면 충분히 좋았다’는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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