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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부산 수영 장대 순교 성지 여행, 천주교 박해의 흔적을 따라가는 시간

by 너랑나랑 여행길 2025. 3. 21.

시작하며

부산 수영구 광안동의 조용한 주택가 골목 안에는 우리가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작은 공간이 있다. 그러나 이곳은 조선 말기 박해 시대,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놓은 천주교 신자들의 순교지라는 점에서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이곳이 바로 수영 장대 순교 성지이다.

1868년 병인박해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던 무렵, 이곳 수영 장대에서는 여덟 명의 천주교 신자들이 혹독한 문초 끝에 군문효수형으로 생을 마감했다. 겉보기엔 평범한 연병장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곳은 신앙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지킨 이들의 희생이 깃든 장소이다.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처형에 이르게 된 과정, 현재 성지의 모습까지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이번 글은 단순한 역사 소개를 넘어서, 실제 현장을 다녀온 관점에서 구성되었으며, 수영 장대 순교 성지를 방문하려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정보도 함께 정리했다. 부산에서 조용히 묵상할 수 있는 공간이나 천주교 순례지를 찾는다면, 이곳은 의미 있는 여정이 될 수 있다.

 

1. 수영 장대의 역사적 배경

수영 장대는 조선 시대에 군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던 경상좌수영이 있던 곳이다. '장대'라는 말은 군 지휘관이 높은 곳에 올라 군사들에게 명령을 내리던 장소를 뜻하며, 지금으로 치면 연병장의 사열대와 유사한 공간이다. 이런 장소는 때때로 사형장으로도 활용되었는데, 박해 시대에는 천주교 신자들이 처형당한 곳으로 그 쓰임이 바뀌게 된다.

당시 경상도의 동해안 방어 거점이던 경상좌수영은 병력과 감시 체계가 촘촘하게 구축된 지역이었다. 이런 배경에서 천주교 신자들이 신앙을 유지하며 살아가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고, 관의 시선에서 벗어나는 것도 불가능에 가까웠다. 결국 이곳은 공개 처형의 장소가 되어 신앙인들을 처벌하는 상징적인 공간으로 남게 된다.

 

2. 가족 전체가 순교한 사건

1868년, 병인박해의 여파 속에서 이정식 요한과 그의 가족, 그리고 주변 교우들이 체포되었다. 이들은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오랜 문초와 고문을 견디게 되었고, 결국 군문효수형이라는 극형에 처해졌다. 무엇보다도 한 가족이 함께 신앙을 선택하고, 함께 순교의 길을 간 것은 깊은 울림을 준다.

순교자 8인의 구성

  • 이정식 요한: 무과에 급제한 군장교 출신. 60세에 입교 후 첩을 내보내고 신앙생활에 전념함.
  • 이월주 프란치스코: 이정식 요한의 아들. 함께 체포되어 순교함.
  • 박조이 마리아: 며느리. 신앙을 저버리지 않고 끝까지 고문을 이겨냄.
  • 이관복 베드로: 조카. 가족과 함께 끝까지 신앙을 지키다 순교함.
  • 양재현 마르티노: 이정식 요한의 대자. 한 차례 석방되었으나 재체포되어 처형됨.
  • 이상근 야고보: 신앙 공동체의 교우. 함께 피신했다가 체포됨.
  • 차장득 프란치스코: 지역 교우. 고문 속에서도 신앙 고백을 유지함.
  • 옥소사 발바라: 여성 순교자로, 마지막까지 신앙을 고백하며 처형당함.

이들 8인은 순교 직전까지 자신의 신앙을 밝히기를 주저하지 않았으며, 군사적 통제 아래 있었던 수영 장대에서 군문효수형이라는 공개적이고 잔혹한 방식으로 처형되었다. 이러한 방식은 당시 민중에게 위협과 경고의 메시지를 주기 위한 것이었지만, 오히려 이들의 굳은 믿음과 평온한 태도는 관군과 시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3. 왜 이들이 처형당했는가?

이정식 요한과 그의 가족, 그리고 주변 신자들이 처형된 배경에는 단순히 종교적인 이유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1868년 당시 조선은 외세의 압박과 내적인 불안이 극심한 시기였으며, 천주교는 불온한 외래 사상으로 간주되어 강하게 억제되고 있었다.

이 무렵 부산에서는 두 가지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며 천주교 박해가 더욱 격화되었다.

① 남연군 묘 도굴 사건

흥선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의 묘를 도굴하려 했다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관은 이를 천주교와 연결 지으려 했다. 결국 천주교는 왕실의 권위를 위협하는 집단으로 몰리게 되었고, 각지에서 대대적인 체포가 시작되었다.

② 박길 사건

부산 초량 출신의 신자 박길은 조선의 신앙의 자유를 확보하기 위해 일본을 통해 서양 국가에 호소하고자 했다. 그는 몇몇 신자들과 함께 관련 서한을 소지하고 있었고, 결국 체포되면서 해당 내용이 발각되었다. 이 사건은 관헌에게 충격을 안겨주었고, 곧바로 부산과 동래에서 천주교 신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체포와 문초가 이어졌다.

이정식 요한과 가족은 이런 시대적 흐름 속에서 신앙을 숨기지 않았고, 결국 이 사건들과 겹쳐 체포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그들의 처형은 단순한 종교 박해가 아니라, 정치적 긴장과 외교적 불안정이 맞물려 일어난 종합적인 결과였다.

 

4. 순교의 현장, 지금은 어떤 모습일까?

현재 수영 장대 순교 성지는 부산교구에서 관리하는 성지로, 외부에는 크고 화려한 시설이 없지만 내부에는 고요하고 단정한 분위기가 흐른다. 입구 오른편에는 여덟 순교자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으며, 누구나 조용히 기도할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화려하지 않지만 그만큼 차분한 분위기에서 묵상과 기도를 할 수 있는 장소이다.

방문 전 알아두면 좋은 정보

  • 위치: 부산시 수영구 장대골로57번길 3 (광안동 546-4)
  • 주차: 전용 주차장은 없으며, 광안성당에 주차 후 도보 이동 권장
  • 분위기: 주택가 안쪽에 위치해 매우 조용하며, 혼자 걷기에 좋음
  • 방문 팁: 주말보다 평일 방문 시 더욱 여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성지를 둘러볼 수 있음

이 성지는 겉으로 보기에 큰 규모의 순례지처럼 보이진 않지만, 내부로 들어서면 그 깊은 의미를 금세 느낄 수 있다. 순교자들의 이름이 하나하나 적힌 표지석을 따라 걷다 보면, 이들이 지켜낸 믿음의 무게가 전해지는 듯하다.

 

마치며

수영 장대 순교 성지는 겉보기엔 평범한 골목 안의 공간이지만, 그 안에는 조선 시대 천주교 박해라는 깊은 상처와 함께 굳건한 신앙의 흔적이 남아 있다. 가족이 함께 체포되고, 함께 순교한 이정식 요한 일가의 이야기는 단순한 역사적 사건을 넘어선 감동을 전해준다.

순례라는 말이 무겁게 느껴진다면, 이곳을 한 번 조용히 걸어보는 것도 좋다. 눈에 띄지 않는 작은 성지지만, 그 안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은 결코 작지 않다. 기도의 장소로, 묵상의 장소로, 혹은 역사를 기억하는 산 교육의 공간으로서 수영 장대 순교 성지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여전히 깊은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부산에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싶다면, 이 조용한 성지를 걸으며 천천히 과거와 마주해보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