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km의 여정 – 용소막성당에서 배론성지까지 도보순례 후기

시작하며

도보성지순례는 단순한 걷기가 아니라, 신앙을 되새기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다. 이번에 걷게 된 원주교구의 ‘님의 길’ 3-5 성사길은 그런 의미에서 더욱 뜻깊은 코스였다.

이 길은 용소막성당에서 배론성지까지 약 10.6km에 이르는 순례길로, 평탄한 길과 오르막, 내리막이 적절히 섞여 있다. 하지만 산봉우리를 두 개 넘어야 하는 구간이 있어 결코 쉬운 코스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길을 걸으며 얻은 경험과 감동은 신앙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이 글에서는 용소막성당에서 배론성지까지 걸었던 과정과 순례길에서 만난 역사적 장소, 그리고 이 길을 걸으며 느낀 점을 자세히 소개하려 한다.

 

1. 원주교구 ‘님의 길’ – 순례의 의미

‘님의 길’은 원주교구에서 개척한 도보성지순례 길로, 총 234km에 달하는 긴 여정이다. 이 길은 천주교 성지뿐만 아니라, 역사적인 장소와 자연유산지, 그리고 순교자의 흔적을 따라 걸을 수 있는 길이다.

이 중에서도 3-5 성사길은 ‘성체길’이라고도 불리며, 신앙을 지키기 위해 먼 길을 걸어 미사에 참석했던 순교자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구간이다. 특히 남종삼 요한 성인과 그의 아버지 남상교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배론으로 가서 성사를 받았던 길이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

 

2. 순례 일정과 도보 여정

① 출발 – 용소막성당 (12:35)

순례는 강원도 횡성에 위치한 용소막성당에서 시작되었다. 용소막성당은 1904년 설립된 천주교 본당으로, 박해를 피해 모인 신도들이 형성한 신앙 공동체다. 이곳에서 간단한 안내를 받은 후, 본격적인 도보순례가 시작되었다.

 

② 첫 번째 구간 – 평탄한 길과 오르막 시작

초반 1~2km 구간은 상대적으로 완만한 평지가 이어졌고, 주변 풍경을 감상하며 순례를 시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곧 오르막 구간(3.09km)이 나타났다. 이 구간은 비교적 가파르기 때문에 체력 안배가 필요했다.

자연 속에서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다 보니,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고요함과 평온함이 찾아왔다.

 

③ 묘재사 도착 – 순교자의 흔적을 만나다

순례길을 걷다 보면 묘재사라는 곳을 지나게 된다. 이곳은 남종삼 요한 성인과 그의 아버지 남상교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머물렀던 장소이다.

남종삼 성인은 조선 시대 가장 높은 관직 중 하나인 ‘승지’에 올랐던 인물이지만,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박해가 심해지자 그는 묘재사에 머물며 기도를 이어갔고, 가끔씩 배론성지까지 걸어가 미사에 참석했다고 전해진다.

순례자들은 이곳에서 잠시 머물며, 그의 희생과 신앙을 되새기는 시간을 가졌다.

 

④ 험난한 산길 – 두 개의 산봉우리

묘재사를 지나면서부터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되었다. 이 구간은 순례길 중에서도 가장 난이도가 높은 구간으로, 연속된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었다.

특히 ‘제천숲속의원’ 진입로 근처에 있는 좁은 개구멍을 통과해야 했는데, 이 부분은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체력이 많이 소모되었지만, 중간중간 쉬어가며 자연과 함께하는 묵상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⑤ 배론성지 도착 (16:12)

약 3시간 26분의 도보 끝에, 드디어 배론성지에 도착했다. 배론성지는 한국 최초의 신학교가 세워졌던 장소로, 신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 곳이다.

이곳에는 ‘땀의 순교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무덤이 있다. 순례자들은 그의 무덤 앞에서 잠시 기도를 드렸고, 이번 순례를 무사히 마친 것에 대한 감사의 시간을 가졌다.

 

3. 순례를 마치며

이번 도보성지순례는 신앙을 되새기며 자연 속에서 묵상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뜻깊은 여정이었다. 험난한 길을 걸으며, 신앙의 선배들이 남긴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니, 순례의 의미를 더욱 깊이 깨닫게 되었다.

이 길을 걸으며 일상의 분주함에서 벗어나 신앙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고, 함께 걸었던 이들과도 더욱 돈독한 유대감을 쌓을 수 있었다.

앞으로도 신앙을 깊이 하고 싶은 이들에게 이 순례길을 추천한다. 신앙을 되새기며, 자연 속에서 묵상하는 경험을 하고 싶다면 한 번쯤 걸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