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며
서울 도심에서 자연과 고요함, 역사와 문화를 함께 느낄 수 있는 곳을 찾는다면 ‘성북동 트레킹’ 코스를 추천한다. 한적한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길상사의 고요함, 우리옛돌박물관의 깊이, 심우장의 정신까지 천천히 스며든다. 대중교통으로 쉽게 닿을 수 있고, 계절마다 다른 풍경을 보여주는 곳이라 누구에게나 권할 만한 걷기 코스이다.
1. 법정 스님의 향기가 머무는 길상사부터 시작하기
(1) 부처님오신날 전, 더욱 평온했던 풍경
성북동 트레킹은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에서 시작한다. 2번 출구로 나와 ‘성북02’번 마을버스를 타면 10분도 안 돼 길상사에 도착할 수 있다. 계절이나 시간대에 따라 조용하게 사찰을 둘러볼 수 있으며, 부처님오신날 전후에는 조형물 설치로 분위기가 달라진다.
(2) 신자가 아니더라도 찾는 이유
길상사는 법정 스님의 마지막 거처였던 진영각이 있는 곳이다. 불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찾을 수 있도록 개방된 공간이며, 나무가 우거진 경내는 도심 속 휴식처로도 훌륭하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법정 스님을 생각하며’ 이곳을 찾고 있었다.
2. 석조 유물로 가득한 공간, 우리옛돌박물관
(1) 국내외 석조 유물의 집합소
길상사에서 10분 정도만 걸으면 ‘우리옛돌박물관’에 닿는다. 이곳은 전 세계에서 유일한 석조 전문 박물관이다. 석물, 불상, 장승 등 다양한 조형물을 만나볼 수 있으며, 실내외 모두 관람이 가능하다. 입장료는 성인 기준 10,000원이며, 월요일은 휴무다.
(2) 특별한 전시가 이어지는 공간
상설 전시뿐만 아니라 계절별 기획전도 진행된다. 2층에는 카페와 야외 테라스가 있어 잠시 머물기도 좋다.
- 동자석: 사대부 묘역에 세워진 어린아이 모양의 석상으로, 종교마다 다른 상징을 지닌다.
- 벅수(장승): 지방 마을에서 마을 주민들이 직접 만든 수호신 개념의 돌장승.
- 환수 석상: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반출되었다가 국내로 돌아온 유물도 다수 전시되어 있다.
(3) 성북동을 조망할 수 있는 포인트
3층 전시실에서는 성북동 전경과 멀리 남산타워까지 조망된다. ‘돌의 정원’이라 불리는 야외 산책로에는 거대한 불상과 묘지 석물이 조성되어 있어 걷는 것만으로도 감흥이 크다.
3. 한용운 선생의 집, 심우장에서 머무르다
(1) 조선총독부를 등지고 지은 북향집
심우장은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이었던 만해 한용운 선생의 자택이다. '조선총독부를 보기 싫어 북쪽으로 등을 지고 집을 지었다'는 일화로 유명하다. 이곳은 사적 제550호로 지정되어 있다.
(2) 문학과 사상의 흔적이 남은 공간
한용운 선생은 ‘님의 침묵’의 저자이며, 3·1운동을 비롯한 민족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인물이다. 심우장에는 당시 지인들과의 교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단순한 주택을 넘어 하나의 정신적 공간이라 할 수 있다.
4. 시와 골목의 교차점, 성북동 비둘기 쉼터와 북정마을
(1) 김광섭 시인의 시에서 만난 공간
성북동 비둘기 쉼터는 시인 김광섭의 「성북동 비둘기」에서 모티브를 따온 장소다. 문학이 일상 속에 녹아 있는 사례로,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시 한 구절이 떠오른다.
(2) 북정마을에 남아있는 시간의 흔적
과거 피란민들이 형성했던 판잣집 마을이었지만 지금은 대사관저가 밀집한 부촌으로 바뀐 곳이 바로 북정마을이다. 성북03번 마을버스 종점이자 성북동의 가장 높은 고지대에 위치해 있어 서울을 조망하기에 좋다.
5. 성북의 문학과 삶을 담은 성북근현대문학관
(1) 지역 문인들의 발자취를 담다
2024년 3월에 개관한 이 문학관은 성북구에서 활동한 문인들의 작품과 삶을 기록한 전시공간이다. 무료로 운영되며, 문학 아카이브와 더불어 체험 프로그램도 마련되어 있다.
(2) 도성 아래 쉼터로 연결되는 길
문학관을 나서면 한양도성 백악구간이 이어진다. 성북역사문화공원으로 연결되는 이 길은 최근 성곽 가시성을 높이기 위해 주택 철거와 조경 정비를 통해 새롭게 단장되었다.
6. 조선의 누에와 마전터, 선잠박물관에서 마무리
(1) 누에의 신에게 제사를 지냈던 선잠단
성북선잠박물관은 조선시대 누에를 키우는 일을 국가적으로 장려했던 역사와 함께, 이를 기리는 선잠제를 소개하는 곳이다. 왕비 서릉씨를 모시는 제단이 있던 장소로, 양잠 문화를 엿볼 수 있다.
(2) '마전터'라는 지명의 유래도 이곳에서
한양도성 밖 그린벨트 성격의 지역이었던 이곳에는 '마전'이라 불리는 표백 작업장이 있었다. 성북동의 ‘마전터’는 단순한 지명이 아니라 이 지역의 생활사를 담고 있는 역사적 장소이다.
마치며
성북동은 단순한 트레킹 코스를 넘어, 문학과 종교, 역사와 문화가 한데 어우러진 공간이다. 이곳의 길은 단지 걷기 위한 길이 아니라, 머무르며 느끼고 돌아볼 수 있는 길이다.
길상사에서 시작해 심우장을 지나 북정마을로, 그리고 문학관과 선잠박물관까지 이어지는 여정은 일상에 지친 이들에게 꼭 필요한 휴식과 영감을 동시에 줄 수 있다.
서울 한복판에서 이렇게 깊이 있는 시간을 걸어볼 수 있는 곳, 성북동. 한 번쯤은 꼭 천천히 걸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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