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면 마음이 괜히 들뜬다. 사람 많은 도심보다 조용히 산과 눈을 바라보며 하루쯤 쉬고 싶어졌다. 그래서 이번엔 차 대신 프리미엄 고속버스를 타고 속초로 향했다. 출발지는 강남고속버스터미널, 종착지는 켄싱턴호텔 설악이었다.
버스 안은 예상보다 훨씬 쾌적했다. 리클라이너 좌석은 비즈니스석처럼 넓고, 무선 충전과 개인 커튼까지 있었다. 조용한 음악을 틀고 기대어 있으니 어느새 서울의 빌딩 숲은 사라지고 창밖엔 흰빛의 강원도가 펼쳐졌다. 홍천휴게소에 들렀을 땐 잠시 눈이 멈춘 들판이 보여 걸음을 멈췄다. 그 짧은 10분 동안 겨울이 주는 고요함이 전해졌다.
속초터미널에 도착하니 약 2시간 반이 걸렸다. 버스 정류장 맞은편에서 7번 버스를 타고 30분쯤 올라가면 설악산 국립공원 초입에 닿는다. 도로 끝에서 산을 올려다보니 오늘의 목적지, 켄싱턴호텔 설악의 붉은 버스와 크리스마스트리가 눈에 들어왔다.
호텔 입구에 들어서면 공기부터 달라진다
로비는 짙은 우드톤에 황금 조명이 번져 있었고, 커다란 트리와 근위병 마차가 영국식 클래식 분위기를 완성했다. 잠시 멈춰 서 있으면 마치 런던의 오래된 호텔에 온 듯한 기분이 든다. 리셉션 한쪽에는 70~80년대에 다녀간 유명 인사들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었고, 벽마다 오래된 시계와 피아노가 놓여 있었다.
기프트샵도 인상적이었다. 무인으로 운영되어 밤에도 이용할 수 있었고, 호텔 전용 맥주나 디퓨저, 테디베어 키링 같은 아기자기한 물건들이 눈길을 끌었다. 가격대도 생각보다 합리적이어서 기념품 하나쯤 사기 좋았다.
카페 애비로드에서 만난 비틀즈와 설악산
체크인 전 들른 애비로드 카페는 단순한 카페가 아니라 박물관에 가까웠다. 존 레논이 입었던 슈트, 폴 매카트니의 친필 악보, 그리고 비틀즈 멤버들의 사인이 새겨진 기타까지. 영국 감성이 그대로 살아 있었다.
창가 자리에 앉으니 설악산 능선이 눈앞에 펼쳐졌다. 구름이 흩어지고 햇살이 스며드는 순간, 따뜻한 홍차와 디저트가 함께 나왔다. 애프터눈티 세트는 2인 기준 약 4만원대였는데, 버리 도자기 식기에 담긴 디저트가 꽤 정성스러웠다. 양은 식사 대용으론 살짝 부족했지만 풍경 하나로 충분히 값어치가 있었다.
테라스로 나가면 설악산의 능선이 병풍처럼 둘러선다. 카메라가 다 담지 못할 정도로 웅장했고, 오른쪽 끝엔 신흥사의 입구가 보였다. 오후엔 그 길을 따라 산책을 나섰다.
신흥사까지 이어지는 겨울 산책길
호텔에서 신흥사까지는 도보로 약 20분 거리다. 길가엔 오래된 석탑이 서 있고, 통일신라 시대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벚꽃나무가 줄지어 있어 봄엔 전혀 다른 풍경일 것 같았다.
천천히 오르다 보면 세심교가 나온다. 계곡 아래로는 작은 돌탑들이 수없이 쌓여 있었고, 그 사이로 울산바위가 병풍처럼 솟아 있었다. 그 풍경 앞에선 누구라도 잠시 말을 멈추게 된다. 극락보전에 도착했을 땐 해가 기울고 있었다. 석양빛에 물든 사찰의 기와와 설악산 능선이 어우러져 묘한 평온이 내려앉았다.
객실 안에서 바라본 설악의 밤
객실 문을 열자 은은한 향이 먼저 느껴졌다. 앤틱한 가구와 따뜻한 조명, 그리고 널찍한 발코니가 마음을 풀어줬다. 오래된 시설이지만 관리가 잘 되어 있었다. 침대는 폭신했고, 침구는 깨끗했다. 콘센트 위치가 살짝 불편한 것만 빼면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웠다.
발코니로 나가면 설악산이 한눈에 들어왔다. 바람이 차가웠지만 그 공기가 오히려 상쾌했다. 밤엔 붉은 2층 버스에 불이 들어와 로비 앞 풍경이 또 다른 분위기로 변했다. 주변에 식당이 거의 없어 미리 사온 간단한 음식으로 저녁을 대신했지만, 오히려 조용한 시간 덕분에 여유가 남았다.
아침의 호텔, 그리고 영국식 조식 뷔페
다음 날 아침, 커튼을 걷자 부드러운 햇살이 설악산을 비추고 있었다. 조식은 2층 레스토랑에서 진행되는데, 영국 왕실풍 인테리어가 인상적이었다. 식탁 위에는 과일, 샐러드, 감자요리, 오믈렛, 전복죽까지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한식과 양식을 모두 즐길 수 있었고, 신선한 채소나 따뜻한 미역국이 유난히 기억에 남았다. 베이컨이 조금 바삭했지만 오히려 그게 입맛을 살렸다.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창밖의 설산을 바라보니, 여행이란 결국 이런 ‘느림’을 만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리하자면
- 프리미엄 고속버스로 2시간 반이면 도착하는 속초 여행
- 설악산이 눈앞에 펼쳐지는 켄싱턴호텔 설악의 풍경
- 10만원대 숙박에 조식, 애프터눈티, 온천 할인까지 포함된 가성비
- 신흥사 산책과 함께 조용히 머리 정리하기 좋은 겨울 코스
서울에서 멀지 않은 거리지만, 공기의 결이 전혀 다르다. 켄싱턴호텔 설악은 화려한 대신 묵직하고, 낡은 대신 깊다. 한 해를 정리하거나 새해를 맞을 때 마음을 다잡기에 이만한 곳이 또 있을까 싶었다. 산과 바다, 그리고 차분한 조명이 함께했던 그 하룻밤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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